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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박세일 선진통일전략 ] 한국불교의 세계화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10-14 조회수   5071

한국불교의 세계화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한반도 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

 

목차

1: 한반도의 꿈: 韓國夢

1-1: 통일 못하면: 분단 3류국가

1-2; 통일하면: 선진통일 1류국가

2: 통일 이후 <세계국가>세우기 철학: 共同體자유주의 (緣起的 자유주의)

2-1: 공동체자유주의란?

2-2: 왜 공동체 자유주의여야 하는가?

 

3: 한국불교 세계화전략의 3단계

3-1: 자기정체성의 확립--<한국불교>란?

3-2: 세계<通불교>의 주체가 되야

3-3: 세계<通종교>의 시대를 열어야

 

4: 어떻게 세계화전략을 추진할 것인가?

4-1: 불교교육제도의 개혁

4-2: 불교조직의 통치구조(governance)의 개혁

 

5: 22세기를 위하여

 

1: 한반도의 꿈: 韓國夢

 

2050년경 한반도는 어떤 모습일까? 요즈음 시진 핑이 등장한 후 중국에서는 <중국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2049년 건국 100 주년이 되는 해까지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는 것이 중국몽이라는 이야기 이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8년까지 어떠한 <한국의 꿈> 즉 <韓國夢>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 어떠한 한국몽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한반도의 미래를 구상해보아야 <한반도의 미래전략>이 나오고 <불교의 세계화전략>이 나온다. 한반도의 미래구상으로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하나는 통일성공의 시나리오--<선진통일일류국가>가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실패의 시나리오 ---<3류분단국가>가 되는 길--이다. 통일의 성공여부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가 크게 달라지고 그에 따라 한국불교의 미래모습(청사진)도 역할과 가치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물론 한국불교에 대한 세계의 기대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1-1: 통일 못하면: 전쟁 속의 분단 3류국가

 

한반도가 통일에 실패하면 그래서 분단이 고착화하면 북한은 砂漠化하면서 결국은 中國化한다. <중국의 변방속국>이 된다. 학자들에 따라 북한에 <제2의 티벳>이 등장할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제2의 만주국>이 등장할 수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전자는 중국의 직접지배이고 후자는 간접지배 일뿐 어떤 형태이든 북한이 중국의 변방속국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곧 나타날 가장 중요한 변화의 하나는 북한의 동해안에 중국 軍港이 생기게 되고 중국의 軍艦이 동해안과 대한해협을 지나 발해만이나 상해로 다니게 된다. 그러면 한국은 중국의 내해에 있는 작은 섬이 될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할까? 핵무장을 포함한 대대적 재무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도 對중국 봉쇄전략을 확고하게 강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동아시아는 불가피 <제2의 냉전>으로 들어간다. 동아시아의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경제적 번영은 물 건너간다.

 

이렇게 되면 Chicago 대학의 John Mearsheimer 교수가 주장하는 중국은 평화적 굴기를 할 수 없다(China can not rise peacefully)--반드시 군사적 충돌을 수반할 것이다--- 라는 명제가 현실화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실상 중국내해에 있는 섬과 같은 신세가 된, 분단이 고착화된 대한민국의 미래는 <3류 분단국가>--아마 제2의 타이완--중국에서 완전 독립하기에는 두렵고 중국과 통일하기에는 자존심이 불허하고, 그래서 反독립 反통일의 노선을 택하고 있는, 국가정체성 실종의 타이완--과 같은 처지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

 

한반도 통일의 실패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막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미래를 전쟁시대로 이끌고 갈 것이다. 잊지 말 것은 지난 500년간 세계권력의 轉移(power transition: 세계1등과 2등의 國力의 순위 변화)가 15번 있었다고 한다. 이 15번 중 11번의 세계전쟁이 났다. 지금우리는 미국에서 중국으로의 국력순위변화--권력전이의 시기에 있다. 대단히 위험한 시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1-2: 통일 하면 : 선진일류국가: <국민국가>를 넘어 <세계국가>로

 

반면에 한반도가 통일에 성공하면 선진통일일등국가가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 것이다. 그리고 21세기세계 번영의 중심축은 <통일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가 될 것이다.

 

우선 통일을 통한 북한동포의 <인간해방의 가치>는 하늘을 칠 것이고 남한과 북한의 경제의 시너지 효과는---젊은 고급인력, 잘 살겠다는 노동의욕, 풍부한 천연자원 --는 실로 폭발적이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경제가 고통을 받고 있는 <저성장의 원인>은 무엇인가? 돈이 없어서인가? 아니다. 돈은 넘치는데 투자할 곳과 소비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세계총수요(global aggregate demand)의 부족에서 온다. 그런데 남북통일은 북한이라는 거대한 새로운 경제영토, 새로운 경제시장의 등장 새로운 거대한 경제수요의 폭발을 의미한다. 북한에 대한 새로운 투자가 폭증할 것이고 그 결과 새로운 소비도 폭발할 것이다. 그래서 외국의 전문가들은 모두가 한국의 통일가능성과 통일경제의 폭발성을 부러워하고 있다.

 

북한투자에 80%만 남한의 물자로 한다면 남한 성장률을 5%정도 추가로 높일 것이라는 연구보고도 있다. 이것은 통일과정에 들어가면 남한의 성장률이 8% 이상이 됨을 의미한다. 지금의 저성장과 양극화의 문제는 일거에 해결되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흔히 북한개발에 드는 비용을 통일비용이라고 부르고 이 통일비용을 모두 남한국민들이-- 우리 정부 예산에서--부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들을 하는데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우선 <통일비용>은 틀린 용어고 사실은 거의 대부분이 북한개발을 위한 <통일투자>이다. 그리고 Rand 연구소 보고서를 보면 한반도 통일투자의 55%이상이 해외에서 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 인구가 젊고 고학력이고 북한에 자원이 풍부하고 등의 북한경제가 가지고 있는 세계경제에서의 比較優位(comparative advantage)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그런데 한반도의 통일은 한반도의 축복으로 끝나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전체의 축복>으로 확산될 것이다. 우선 한반도 통일에 가장 큰 수혜지역은 동북3성이 될 것이다. 물류문제의 해결과 불안정한 세습독재국가(북한)의 소멸로 인하여 한반도 통일이후에는 滿洲경제가 본격적으로 도약의 전기를 맞이 할 것이다. 다음의 수혜지역은 러시아의 極東이 될 것이다. 러시아의 미래는 극동시베리아의 개발에 달려 있다. 이를 목표로 한 <푸틴의 동방정책>의 성공여부도 실은 한반도가 통일되어야 본격화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의 동부도 일본도 한반도 통일의 수혜지역이 될 것이다. 최근 山東省은 環西海經濟圈을 구상하고 있다. 우리의 서해를 지중해와 같이 만들겠다고 흥분하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 등이 環東海經濟圈 구상을 세운지는 이미 오래이다. 오로지 天時만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의 철도 송유관 가스관등이 한반도를 종단하여 일본으로 연결되면 동아시아는 새로운 폭발적 경제성장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철도 등의 연결은 중앙아시아를 새로운 경제발전의 지역으로 등장시킬 것이고 한반도 경제발전과 긴밀히 연계될 것이다. 한마디로 19세기가 영국의 시대였고 20세기가 미국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분명히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의 어디가 세계발전의 중심축이 될 것인가는 <통일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가 그 답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변화를 기반으로 하여 통일한반도가 앞장서 <동아시아의 경제공동체구상>을 추진하게 될 것이고, 그 경제공동체를 기반으로 <동아시아의 안보협력체 구상>도 추진하게 될 것이다. 非核지대를 한반도에서 일본 만주로 확대하여 나가는 비핵 belt 확대구상도 추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진행되어야 동아시아는 제2 냉전이 없는 <평화의 시대>가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한반도가 통일하여 강력한 동아시아의 한 축이 되면, 중국의 부상도 불가피 <중화주의적 패권주의>의 길을 가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군사적 충돌 없이 중국의 평화적 부상이 가능하게 된다. 한마디로 한반도 통일이 사실은 중국에도 큰 이익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통일한반도는 <국민국가(nation state)>단계를 넘어 <세계국가(global state)>로 비약하게 될 것이다. 세계중심국가--세계선진일등국가, 세계평화중심국가 세계도덕문화대국--- 로 비약할 것이다. 사실 이것이 21세기 한반도의 꿈이다. 韓國夢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몽은 <선진통일-세계국가>라고 정리할 수 있다. 고구려가 망한 이후(AD 668년) 시작된 한반도의 1천 500년간의 <세계변방국가>의 역사를 끝내고 이제는 <세계중심국가>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오래된 한반도의 恨이고 꿈이었다. 이것이 앞으로 약 15년 안에 선진통일과정을 완성시키고 그 이후 2050년까지 우리가 이루어야 할 국가비전이고 목표이다.

 

 

2: 통일 후 <세계국가> 세우기 철학: 공동체자유주의(緣起的 자유주의)

 

[國家理想으로서의 세계국가}가 되기 위한 선진화와 통일은 즉 선진통일은 확고한 철학에 기초해야 한다. 여기서의 철학이란 국가의 [구성원리] 내지 [운영원리]로서의 철학이다.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도와 질서를 어떠한 원리에 기초하여 만들어야 하고 어떠한 원리에 기초하여 운영하여야 우리가 선진화와 통일을 이룰 수 있는가--그리고 그 이후 세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가 하는 의미의 국가철학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는 모든 국가시스템(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共同體 自由主義(communitarian liberalism)]의 방향으로 개혁하고 운영하여야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고 통일 후 세계국가의 건설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자유주의에 역행하는 구성 원리, 즉 자유주의를 부정하거나(非자유주의) 공동체의 연대를 경시하는 철학(분열주의)에 기초하여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그러한 방향으로 국가를 운영하면 선진국진입에도 통일의 완성에도 실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무엇이 공동체자유주의이고 왜 공동체자유주의여야 선진화와 통일이 가능한가? 나아가 세계국가의 건설이 가능한가? 를 보도록 하자.

 

2-1: 공동체자유주의란 ?

 

공동체자유주의란 한마디로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자유주의][공동체배려의 자유주의]이다. 공동체 자유주의는 무엇보다 먼저 자유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고 그것을 소중히 한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개인행복과 국가발전의 원리라고 본다. 그러나 그 개인의 자유가 너무 과도하게 강조되어 공동체의 연대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사회구성원 각자의 성찰과 배려 그리고 자율과 책임을 요구한다. 이것이 공동체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는 개개인의 創意의 덕을, 그리고 공동체주의는 이웃과의 共感의 덕을 강조하다. 그래서 공동체자유주의는 공동체구성원의 개개인의 창의력과 집단적 공감능력을 높이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의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민족이나 계급의 가치를 강요하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나 [집단주의(collectivism)]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공동체의 강조는 어디까지나 외적 강제가 아니라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성찰과 자발성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공동체자유주의에서 상호 토론과 교육, 소통과 설득이 중요하다.

 

본래 자유주의란 개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개인의 행복의 원천이고 국가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상이다. 그래서 국가의 간섭이나 개입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보호하고 지키려 노력한다. 이 자유주의가 전제하는 [자유주의적 인간관]에서는 인간을 본래 무한의 존엄성과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고 보고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善은 그 무한의 가치를 실현하고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와 국가의 목적도 그러한 개개인의 자기실현과 자아완성이 가능하도록 돕는데 두고 있다. 그래서 [인격완성과 자아실현]이 인간사회의 최고의 선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개개인의 인격완성과 자아실현은 [자유사회(free society)]에서만 가능하다. 즉 자유사회가 실현되려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책임주의 그리고 국가 스스로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제한하는 법치주의 등이 잘 지켜져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자유사회가 가능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자유주의의 입장을 지지한다.

 

그런데 인간은 [개체적 개성적 존재]이면서도 본래가 [관계적 공생적 존재]이다. 우리 인간은 시간적으로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며 공간적으로 사회를 떠나 살 수 없고, 또한 항상 자연 속에서 숨 쉬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역사공동체] [사회(국가)공동체] [자연공동체]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이 세 가지 공동체 속에서 인간은 존재하고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고 발전하고 번창한다. 따라서 개인의 존엄과 자유가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自由萬能주의][自由絶對주의][自由原理주의]되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공동체를 훼손하는 자유만능주의, 자유절대주의, 자유원리주의는 결국은 관계적 공생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서 자유주의자체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도 발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인류발전의 원동력인 개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면 반드시 [지속가능한 자유주의][발전적 자유주의]를 확보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우리가 주장하는 자유주의는 반드시 [共同體자유주의]이어야 한다.

 

이 공동체자유주의를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緣起的 자유주의]가 될 것이다. 불교는 세계와 인간을 본래 연기적 존재로 보기 때문에 자유주의(개인의 존엄과 창의와 자유)가 반드시 연기성(상의상생의 공동체성)을 존중하는 자유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극히 당연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 二元論的 논리(선과 악, 개체와 전체 등)가 강한 서구적 사고에 물든 분들에게는 자유주의 앞에 공동체를 부쳐서 강조하여야 비로소 이해하기 쉬운 올바른 방향제시가 될 것이다.

 

2-2: 왜 공동체자유주의여야 하는가?

공동체자유주의는 [인류발전의 보편적 원리]이다. 공동체자유주의를 따르면 인류는 발전하고 아니하면 퇴보한다. 이 주장의 타당성은 지난 수천 년의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쉽게 입증된다. 최근 세계적 經濟史家 들의 연구를 보면 BC 1000경 당시 지구인들의 일인당 년 평균소득은 요즈음 가격으로 약 US $ 150 정도로 추산된다. 그런데 AD 1750년경--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직전--지구인들의 일인당 년 평균소득을 같은 방식으로 추산하면 약 US$ 180수준이다. 즉 지난 약 2-3000년간 인류의 물질적 풍요의 수준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기간 중 생산성 증가율(기술진보 속도)은 년 평균 약 0.05% 정도로 미미했다. 약간의 생산성과 소득 상승이 있어도 곧 인구증가가 뒤따라서 성장을 잠식하여 버렸다. 한마디로 대단히 오랜 기간 인류는 물질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생활--赤貧의 생활--을 하여 왔다.

 

그러나 1750년 이후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인류의 역사는 크게 바뀌게 된다. 2000년 현재 지구인 평균의 일인당 년 평균소득은 약 US$ 6,600이다. 지난 200년간 180불 수준에서 6,600불 수준으로 급격한 도약을 한 셈이다. 인류의 긴 역사에서 보면 분명 하나의 기적이었다. 어떻게 이 기적이 가능하게 되었는가?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유주의> 때문이다. 이 자유주의는 경제적으로는 [교역의 자유]와 [시장의 확대] 즉 [경제적 자유의 확대]로 나타났고, 정치적으로는 [사유재산권의 보호와 확대], [국가의 경제개입의 축소] [법치주의의 정착] 등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사상과 학문의 자유]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나타난다. 이들이 모두 중요하나, 특히 교역의 자유와 시장의 확대가 중요하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주장대로 國富를 결정하는 노동생산성은 노동 분업(특화)의 수준과 정도(degree of specialization)에서 오고, 분업과 특화의 수준과 정도는 [시장의 크기(size of market)]에 의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시장이 커야, 보다 세분화된 높은 수준의 분업과 특화가 가능하고, 그 결과 노동생산성이 증가하고 국부가 증가한다. 따라서 지난 200년간의 [동내시장]에서 [지역시장]으로 나아가 [국가시장]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시장]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시장의 확대>의 움직임--우리가 세계화(globalization)이 라고 부르는 이러한 움직임---이 엄청난 생산성과 국부의 증대를 가져 왔다. 물론 이러한 시장의 확대는 사유재산권의 보호, 교환과 거래자유의 확대, 정부의 자의적 개입의 축소(세금축소와 탈규제) 과학기술의 발달 등과 함께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자유주의의 확대]가 바로 인류역사 속에서 지난 200년의 기적을 만든 주원인이고 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어다 보면 모든 나라가 이 기간 동안 같은 속도의 발전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성장이 빠른 나라도 있고 늦는 나라도 있었으며, 같은 나라도 발전이 빠른 시기도 있고 늦는 시기도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렇게 발전의 緩急을 결정하는 것일까? 시대는 이미 크게 보아 자유주의의 시대로 진입하였다면 자유주의 안에서 무엇이 발전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추구하는 자유주의가 어떤 자유주의이냐에 의해 다른 결과를 가져 왔다고 볼 수 있다. 자유주의의 내용이 공동체가치를 존중하는 [공동체 자유주의] 경우에는 그 나라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왔지만, 공동체가치를 무시내지 부정하는 [이기적 자유주의]는 그 국가공동체의 지속적 발전을 어렵게 만들어 왔다. 공동체 가치와 연대를 경시하고 파괴하면 결국은 자유주의가 지속가능하지 못하고 성장과 발전이 지체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역사는 자유주의가 [공동체 자유주의]일 때 발전하고 그러하지 못할 때 발전이 지체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지난 200년간의 인류의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 볼 때 당연히 대한민국의 선진화와 통일의 철학--더 나아가 세계중심국가(global pivotal nation)의 철학은 [국가발전과 지속유지의 철학][국민통합과 화합의 철학]인 [공동체자유주의]가 아니 될 수 없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이 공동체자유주의라는 [국가의 구성 원리와 운영원리]를 기초로 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각각의 분야에서 선진화 전략과 통일정책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추진하여 나가야 한다.

 

 

3: 한국불교의 세계화 전략의 3단계

 

대한민국의 미래모습이 앞에서 본 바와 같을 때, 즉 대한민국이 선진화와 통일을 이루고,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나아가, 세계국가로 도약할 때, 그 과정에서 우리 한국불교는 어떠한 역할을 하여야 할까? 어떠한 기여를 하여야 할까? 여기에서 한국불교의 3단계 세계화전략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3-1: 제1단계: 한국불교가 <자기정체성>부터 확립해야 한다.

 

한국불교가 세계발전에 기여하려면--대한민국의 선진통일을 이루고 세계국가로의 도약에 기여하려면 --- 우선 한국불교만의 자기특성 자기정체성이 무엇인가? 인류와 세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한국불교만의 특이한 장점이 무엇인가? 소위 <한국불교론> 이 나와야 한다. 지금까지는 한국불교가 중국불교 특히 <중국선불교의 亞流>라고 보는 경향이 해외에서 많았다. 그러면 적어도 정신적으로 종교적으로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자주독립국가가 될 수 없다.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중국의 변방속국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한국불교를 가지고 한국불교의 장점--교학이든 수행분야이든---을 찾아서 인류의 행복과 세계종교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여야 한다. 그러 하려면 제일먼저 우리불교의 나름의 특장을 찾아야 한다. 우선 인도불교와 한국불교가 무엇이 다른가? 중국불교와는 그리고 일본불교와는 한국불교가 무엇이 다른가? 이에 대하여 우리 불교가 답하여야 한다.

 

문외한인 내 생각으로는 한국불교의 가장 큰 특징--자랑할 만한 한국불교의 원형--을 <원광대사의 세속5계>에서 찾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원광법사의 세속5계에는 儒佛이 융합되어 있는 사상으로 출가와 세속이 함께 하는 사상이다. 定慧쌍수라는 자기수양을 밑에다 깔고 원광법사가 제시한 세간의 율법으로 즉 세속5계--事君以忠 事親以孝 交友以信 臨戰無退 殺生有擇---를 그 위에 세우면--上求보리와 下化중생을 하나로 융합한 ---대단히 강력한 대한민국적 불교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원광법사의 가르침은 西山과 사명대사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면 어떨까?

 

특히 임전무퇴와 살생유택은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중생의 삶의 현장은 일종의 싸움의 연속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을 위하여도 세계국가의 건설을 위하여도 우리는 尙武精神이 필요하다. 어떠한 마음으로 삶의 현장에서 싸울 것인가?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가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국가든 개인이든 싸움이란 자기보호나 자기확장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좀 더 이론화하면 예컨대 세속5계에서 이야기하는 전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無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을 보다 깊이 생각하고 분석을 하면 많은 사상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살생유택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살생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유택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하기 나름으로 內佛外孺의 길이--內소승 外대승의 길이--- 또한 보다 <전투적인 삶의 현장>에 깊이 들어가는 불교가---나올 지도 모른다. 그러면 인도나 중국이나 일본을 제압할 한국불교의 모습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인류의 미래에 기여할 한국불교의 모습이 나올 것 같다. 다시 강조 하지만 우리 불교가 특히 <중국불교의 아류>가 되어서는 자주독립의 세계중심국가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이 시대 우리불교에 대한 최대의 도전의 하나이다.

 

또 하나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살려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승가의 청정수행의 전통>이다. 주지하듯이 우리승가의 청정수생의 전통은 다른 나라에서 따라오기 어렵다. 중국은 大乘을 이야기하지만 대승의 교학과 수행이 현실 속에서 중단 된지가 오래이다. 말만 무성하고 실천은 거의 없다. 일본의 불교는 많이 세속화되고 생활화되었다. 솔직히 청정수행의 실천이 우리만 많이 못하다. 우리나라의 <생명친화적 자연친화적 청정수행의 법통>은 반드시 지켜나가고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청정수행의 절차와 내용을 보다 세계화하여야 한다. 세계인들이 모두 따르고 싶어 하고 쉽게 따를 수 있는 모범적 청정수행 모델을 만들어 제시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세계로 나가려면 먼저 한국불교의 장점을 우뚝 세워야 하고 세계인들이 이해하도록 세계화하여야 한다.

3-2: 제2단계 : 한국불교는 우선 <세계 通불교>를 지향하여야 한다.

 

한국불교는 자기 정체성을 세운다움에 세계로 나가면서 우선 세계의 다양한 불교와 열린 마음으로 대화 교류하여야 한다. 그리고 모두를 하나의 원리로 묶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우선 동아시아(동남아과 동북아)에 있는 다양한 불교들 (소위 초기인도불교, 동남아 불교 티벳트 불교 중국불교 일본불교 등)과 소통하면서 불교적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하여 동아시아 불교가 하여야 할 역할에 대하여 서로 토론하고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각 나라의 불교가 각각 가진 장점을 서로 교환하면--서로 이해하며-- 서로 돕고 공영하는--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발전--평화와 풍요---에 공동기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어는 선방에 <화두선>을 하시지 않는 분은--특히 위빠사나 혹은 염불선을 하시는 분은 ---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글을 써 놓은 적이 있다고 들었다. 한마디로 한심한 일이다. 反세계화적 발상이다. 조선조 말 <개항은 매국>이라고 주장하는 수구파 때문에 우리는 근대화에 실패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보기에 한국불교가 세계적 <퉁불교운동>에 앞장섬--통불교의 기준과 원칙을 제시함--으로서, 중국불교로 부터의 해방이 가능하고 세계 모든 불교의 포용이 가능하다. 이것이 없으면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어렵게 된다. 그러면 한국불교는 역사진보가아니라 역사퇴보의 선봉장이 될 수 있다.

 

 

3-3: 제3단계: 한국불교는 그 다음으로 <세계 通종교>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한국불교는 이제 세계로 나가 각종종교--기독교 카토릭 힌두교 이스람교 등등--과 대화 교류하여 이제는 세계 모든 종교를 서로 화해시키고 하나로 묵는 세계적 <通宗敎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 중심에 한국불교가 우뚝 서 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것이 문제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한국불교가 주도하여 통종교시대를 열면서 그 가운데 한국불교가 우뚝서는 날에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한반도의 꿈이 선진통일과 세계국가--세게중심국가--의 건설에 있다고 하며는 우리의 불교도 반드시 선진화와 통일을 이룬 나라의 불교다워야 하고, 동아시아의 중심국가 더 나아가 세계국가를 이룩한 나라의 불교다워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선진화와 통일 후 세계국가를 국가비전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한국불교는 반드시 통불교 통종교에 앞장서는 한국불교가 되어야 한다.

 

 

4: 어떻게 세계화전략을 추진할 것인가?

 

우선 두 가지 제도개혁이 시급하다고 본다.

 

4-1: 불교의 교육제도의 개혁이다.

 

승가의 교육제도와 일반불자의 불교교육제도(동대 불교대학 등)를 근본적으로 크게 고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우선 현재의 승가의 교육제도를 크게 개혁하지 아니하면 21세기 새로운 불교, <선진통일불교>를 <세계국가불교>를 이끌고 나갈 새로운 <불교 리더십>을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리더십 없이는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몇까지 개혁방향을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1) 불교대학과 승가대학의 교육제도에서 특히 <세속의 학문>에 대한 체계적 종합적 이해의 기회를 크게 높여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불교학이외에 일반 사회과학(정치 경제 등) 인문과학(문학 역사 철학 등) 그리고 자연과학(과학 생명 환경 등)의 교육을 크게 강화하여야 한다.

 

우리는 말로는 世法과 佛法이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동안 스님들이나 불자들이 世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아니했다. 정치와 경제와 사회를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흐름을 보다 심층적으로 파악하여야 한다. 그러하지 못하면 국가선진화의 길을 찾을 수 없고 이 시대의 중생의 고통과 고민을 알 수 없다. 중생의 삶의 조건을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중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이 시대를 구할 수 있겠는가? 禪家에서 不立문자를 내세우는 전통이 있지만 그것은 世間을 외면하고 世俗에 대하여 무지한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은 아니다. 세법을 잘 알아야 下化중생을 바로 할 수 있고 그래야 불법을 크게 펼 수 있다고 본다.

 

(2) 불교대학과 승가대학교육에 세계화교육(외국어, 외국역사, 외국문화교육 포함)과 정보화교육(IT BT는 물론이고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하기 위한 첨단 과학기술교육)을 대폭 강화하여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불교의 장점--한국불교--을 세계를 향하여 그들이 이해하는 世界語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웃나라들의 한국불교를 그들 나라의 언어로 배우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한국불교를 세계언어로 출판하여야 하고, 그들의 언어로 한국불교를 설명할 수 있는 인재들을 키워야 한다.

 

또한 21세기 정보화시대 첨단의 IT 기술을 활용할 수 없다면 文盲과 다르지 않다. 외국과 소통하지 못하고 IT 기술을 활용할 수 없다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종교지도자가 되기 어렵다. 따라서 불교대학과 승가대학교육에서 <세계화교육>과 더불어 <정보화교육>을 크게 강화하여야 한다.

 

(3) 불교대학과 승가대학에서 <평생교육의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세상의 변화, 과학기술의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한 번의 학교교육으로 세상을 따라 갈 수 없다. 그래서 세속에서도 평생교육의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학교를 졸업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학교로 돌아와 새로운 向上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마디로 21세기는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의 시대이다. 세상의 변화가 빠르기 때문이다. 승가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불교대학이나 승가대학을 졸업한 불자도 5년 혹은 10년 마다 새로운 <向上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지 아니하면, 중생들과의 소통능력은 크게 떨어 질 것이다. 결국 下化중생을 위한 타종교와의 경쟁력, 攝受중생을 위한 승가의 생산성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중생구제의 大願을 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4) 교육제도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불교교육제도>와 <승가의 자격제도>를 연계하여야 한다. 물론 승가가 되려면 불교의 교학에 대한 이론적 체계적 이해는 기본이다. 그리고 일정기간 수행정진도 기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21세기 한국불교의 불교지도자가 되기에 크게 부족하다. 앞으로는 세계화되고 정보화된 내용의 고등교육을 받은 불자, 불교뿐 아니라 세간의 인문사회 자연과학 분야의 학문을 일정수준 필한 불자들에게만 <승가의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 선진통일과 세계중심국가 시대를 이끌 미래의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교육기준이 요구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승가의 자격을 가진 불자들에게도 앞에서 이야기한 평생학습의 차원에서 세간학문을 배울 향상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더 나아가 승가의 자격제도도 보다 세분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개인수행에 역점을 두는 [修行僧]과 중생교화에 역점을 두는 [法師僧] 등으로 나누며 각각에 걸 맞는 교육제도와 자격제도가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서로 相補相依的으로 연계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면 앞으로는 불교교육과 불교자격제도는 반드시 체계적으로 연계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불교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고 그로 인하여 불교의 선진화와 세계화를 크게 앞당길 수 있다.

 

 

4-2: 불교의 거버넌스(governance)의 개혁이다.

 

불교종단과 사찰의 조직과 운영원리, 즉 불교의 거버넌스(통치구조)를 크게 개혁하여야 한다. 몇 가지 개혁방향을 제시하자.

 

(1)우선 종단과 사찰의 조직과 운영을 점차 僧과 俗 간의 [일방적 수직적 統治]구조에서 [쌍방적 수평적 協治]구조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불교의 거버넌스를 [僧俗간의 統治구조]에서 [僧俗간의 協治구조]로 바꾸어 새로운 [21세기 형 [新 불교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불교의 모든 제도는 산중생활을 하는 승려본위로 조직되어 왔다. 승려는 항상 主고 신도는 항상 從이였다. 그래서 불교발전을 위한 일반신도의 참여와 기여는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불교의 거버넌스를 이대로 두면 불교발전은 어려워질 것이다. 한마디로 불교의 거버넌스를 좀 더 민주화 개방화하고 참여적 협력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금의 폐쇄형가지고 종단과 사찰의 발전은 어렵고 한국불교의 발전에 역행적이 될 것이다..

 

종교단체에서 수행승에 대한 존중과 존경은 기본이고 원칙이다. 대학에서 교수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기본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누구나 잘하는 분야가 있고 못하는 분야가 있다. 각자가 잘하는 것을 찾아 그것에 특화하면서 서로 협력하면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고, 그리고 그 성과들을 모으면 사회 전체에의 기여의 몫(pie)이 커진다. 이것이 모든 조직의 발전원리이다. 즉 특화(분업)와 협력의 원리가 그것이다. 이를 [分業과 協治의 原理]라고 부른다.

[수행승]은 수행에 전문성이 있는 분들이다. 그래서 수행에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종단과 사찰의 살림살이에는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종단과 사찰의 행정적 경제적 살림은 신도중에서 그 분야의 전문가(전문경영인, 기업가, 행정가, 회계사 등)들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행과 교화는 수행 스님들이 가장 잘 하는 분야이기에 그 분들이 맡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종단이나 사찰이 나아갈 <수행의 큰 방향>과 <교화의 큰 방향>은 수행스님들이 정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하여 어떻게 사찰을 경영하고 운영하여야 하는가? 더 나아가 변화하는 세상에 맞는<21세기형 사찰운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찰경영의 세계화 정보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은 世間法을 좀 더 잘 아는 法師僧이나 일반 신도중 기획선전 조직운영의 전문적 경험과 지식이 있는 분들에게 맡기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이러한 형태의 [승속간의 분업과 협치구조]가 잘 발전해야 불교가 크게 융성하고 불교의 선진화와 세계화가 성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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